문화의 소비자. Me*y

최근들어서는 요즘 만큼의 '무작정 소비'의 시절도 없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만들고 있지 않다, 라는것도 꽤나 크지만 그것보다는, 누군가의 '무엇'을 보았을때 느껴지는 안도감+불안감+좌절감+...   이 더 크다. 그래도 굴러가기위해 나는 직접적 consuming 대신 남의 것을 들춰보며 (선생님의 블로그를 들락'한다거나. 유튜브를 떠돈다거나. 그런것들. ) 작은 희열과 안도감이나마 느끼려 하는 것이다.
아아. 따끔한 충고를 감사합니다.  ㅋ

Lovers, 1988 every fever


욕조. Me*y

 욕조에서 책을 읽는 '로망'은 실현하기가 그닥 수월하지 않다. 묙조안에 앉아있으면 어떤 이유로든 끊임없이 손에는 물 묻을 일이 생기게 마련이고, 신경쓴다고 써도 손의 습기는 곧 책을 공격한다. 궂이 책을 흠 없이 보겠다는 주의는 아니지만 물이 책에 있어서 위협적인 존재인것은 분명하다. 가만히 두어도 습기에 알아서 말려올라가는 표지...
 분명 많은 사람들은 이미 여러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비닐로 만들어진 책? 물이 뭍지 않도록 바로바로 말려주는 책상.
애초에 -_-  왜 숱한 영화와 이야기들은 나를 욕조에서 책을 보게 만들었냔 말이야...
 

wall 2009 Works



wall, 2009, nov.

Hongik univ. fineart gallery.



Her Morning Elegance / Oren Lavie every fever


[전시] 傳展(전전)-전하다. 펼치다. Works


傳展(전전)-전하다. 펼치다.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예술학과 기획展  
2009_1123 ▶ 2009_1128

초대일시_2009_1123_월요일_05:00pm

참여작가 권성운_김신영_김영지_김지영_김현주_라지현 박수형_장유진_전영진_정보경_조미예_조세진 글쓴이 박경린_박은정_박혜진_서정민_임일호_최순영

주최_홍익대학교 회화과 대학원_예술학과 대학원

관람시간 / 09:00am~06:00pm / 목,금요일_09:00am~08:30pm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HONGIK UNIVERSITY 서울 마포구 상수동 72-1번지 문헌관 4층 Tel. +82.2.320.1322



홍익대 회화과와 예술학과 대학원 과정에 있는 작가 12명, 미술이론을 공부하는 6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비평과 작품의 관계를 전시공간에서 실험하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한 전시. 『전전(傳展)』이라는 전시명의 각 글자는 글로 전하고, 작품으로 펴내는 각각의 역할과 동시에 서로의 만남을 의미한다. 그래서 본 전시는 상호텍스트성을 강조하는 현대 미술에서 작품과 비평의 협력이 '전달'과 '소통'을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그리고 있다. 아울러 작품을 '전하고 펴내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복합적인 의미망 속에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작품을 읽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김신영_After-image;flower shop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목탄_97×162.2cm_2009
박수형_흐르다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09
장유진_이치가 본래부터 그러하다_혼합재료_높이 180cm_2004
전영진_Dis-illus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09
김현주_The last using wat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스팽글_97×145.5cm_2009
김영지_힘껏 뛰었을 때, 나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91cm_2009

● 현대미술에서 상호텍스트성이라는 단어가 핵심어로 떠오른 지 40년이 넘어가지만 우리는 아직도 '소통'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되며 아직도 새로운 숙제인양 여깁니다. 그래서 '소통'이라는 단어가 마치 '진부함'의 동의어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소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노력까지 하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갑자기 "미술이론을 공부하는 우리가 실제로 소통을 시도나 해보면서 식상하게 여기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상호텍스트성이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와 이를 피드백하는 독자를 현실의 특정한 '인간주체'로 가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작가와 비평가, 혹은 관람자 등의 역할이 고정되어 상호텍스트성이 발생하지 않는 결과를 낳겠지요. 하지만 이에 대해 수긍하고 작품과 별개로 이론만을 위한 이론을 공부하는 태도는 지금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변명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런 질문에서 시작하여 우리는 실기와 이론의 경계를 벗어나 '미술'이라는 큰 이름 아래에서 순수하게 작품을 접하고 '소통'을 시도해 보고자 했습니다. 먼저 비슷한 또래의 작가들을 직접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며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나타난 傳(전)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비평문이라는 중간 결과물들을 만들어 다시 傳하는 과정에서 상호텍스트라는 단어를 교재 안에서 보듯 피상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시작된 傳이 계속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미숙함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이번 전시를 계기 삼아 가까스로 용기 내어 서투른 평론들을 선보이고자 합니다. 이 글들을 접하는 모든 관람객들에게 우리의 용기가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동시에 한 가지만 명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글들은 정답지가 아니며 단지 먼저 읽으려는 시도를 해 보았던 노력의 흔적입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지금까지 해온 작업보다 앞으로 해 나갈 작업들이 더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며 우리는 그들이 우리들 자신의 언어로써 한정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이 전시는 단지 대화의 시작을 다짐하는 주춧돌이라고 생각합니다. ■ 임일호

김지영_Mixed 0909_캔버스에 에나멜_162×260cm_2009
권성운_Foundamental colors_사진_90.9×97.7cm_2009
조세진_Eye bal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2.2×130.3cm_2009
조미예_Enough_캔버스에 유채_160×112cm_2009
정보경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94×130.3cm_2009
라지현_Don't push m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레이스_130×162cm_2009

● 본 전시는 예술학과 대학원생들과 기획과 비평을 공동으로 진행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짧지만 긴박한 논의 끝에 전(傳)전(展)이라는 타이틀을 결정하게 되었고 회화과와 예술학과가 서로간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학문에 더욱 심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기획의 의미나 논의를 정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작가들이 그동안 탐구해 오며 정립하기 힘들었던 대상과 환영, 혹은 본질에 대한 수 없이 많은 질문과 답변에 아주 작은 해소를 주는 정립의 시간 이었습니다. 벌리기에 급급했던 불안한 시선을 잠시 응시하게 하는 시간이 되었고, 같은 공간에서 다른 불안으로 갈증을 해소해오던 작가들이 모여 작업의 결실을 펼쳐놓는 장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개개인의 작가들에게 이 전시는 앞으로의 작업을 펼쳐가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전(傳)전(展)의 의미는 잘 꾸며진 타이틀과 기획으로 작품을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작가들은 자신들이 응시한 불안한 시선을 있는 그대로 펼치고(展), 젊은 평론가들은 자신들의 표현의 매개인 비평으로 참여하여 함께 전(傳)하는 것에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전시의 형태인 펼침(展)을 전하는 행위(傳)의 본 전시는 날 것 같은 생생한 작품과 비평을 무기로 하나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제 전시를 바라보는 여러분이 또 다른 개인 개인의 사유와 날카로운 비평으로 작품을 논하고 전시를 평하여 이 전시를 새롭게 펼쳐주기를 바랍니다. 작가들이 내지른 소리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지 않도록 답하여준 평론가들이 있었기에 전시가 진행되고 큰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작은 귀를 기울여 작가들이 펼치는 미궁의 소리를 경청해준 6명의 평론가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작가들이 하얀 화면을 마주 할 때 큰 용기가 필요하며 그 용기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펼치고(展) 전하는 것(傳)들은 이 모든 만남과 소통의 소중한 결실이라 생각합니다. ■ 권성운


[전시] 11.23-28 " 전(傳)전(展) "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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